[뮤지컬 백설 공주를 사랑한 난장이] 재연을 기다리며(반다리,바다,여정,무대,FAQ)
뮤지컬 《백설공주를 사랑한 난장이》 솔직히 이건 예상 밖이었습니다. 말 한마디 없이 무대를 가득 채우는 배우를 보게 될 줄은 몰랐거든요. 이 작품은 2001년 초연 이후 15년 넘게 사랑받아 온 대한민국 대표 창작 뮤지컬입니다. 백설공주 이야기를 알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막내 난장이 반다리의 눈으로 다시 보니 전혀 다른 이야기였습니다.
목차
말 대신 몸으로 표현한 사랑
제가 이 공연을 보러 갔을 때, 솔직히 처음엔 '아, 어린이 뮤지컬이구나' 하는 생각이 먼저 들었습니다. 무대도 아기자기했고, 소품들도 동화책 속에서 막 튀어나온 것처럼 귀여웠으니까요. 그런데 반다리가 처음 등장하는 순간, 그 생각이 완전히 뒤집혔습니다.
반다리는 선천적으로 발화 장애(發話障碍), 즉 목소리로 말을 할 수 없는 인물입니다. 발화 장애란 신체적·신경학적 원인으로 인해 언어를 소리로 표현하지 못하는 상태를 뜻합니다. 그러니까 이 캐릭터는 대사가 아예 없습니다. 한 마디도요. 그 대사의 공백을 온전히 채우는 것은 오로지 배우의 섬세한 신체 연기였습니다.
반다리 역을 맡은 배우 최미령의 신체 움직임은 그 자체로 완벽한 언어였습니다. 손끝 하나, 눈빛 하나가 "좋아해"라고, "무서워"라고, "제발 살아줘"라고 말하고 있었습니다. 실제로 관람하여 느낀 점은, 대사가 없다는 사실을 잊게 만드는 수준이었다는 겁니다. 오히려 말이 없기 때문에 더 크게 전달되는 감정이 있다는 걸 그날 처음 알았습니다.
이런 연기 방식을 마임(Mime) 또는 신체 표현(Physical Theatre)이라고 부릅니다. 마임이란 대사 없이 몸의 움직임만으로 감정과 상황을 전달하는 공연 예술의 한 형태입니다. 최미령 배우는 이 마임의 언어를 단순한 기술이 아니라 진짜 감정으로 구사하고 있었습니다. 한순간도 눈을 뗄 수가 없었습니다.
무대 위에서 바다가 열리던 순간
공연을 보면서 제가 속으로 "와" 하고 감탄한 장면이 딱 하나 있었는데, 바로 공주가 물속에 빠지는 장면입니다. 이게 어떻게 표현되나 싶었거든요. 무대에 실제 물을 쓸 수도 없고, 영상을 틀자니 소극장 느낌이 깨질 것 같고요.
그런데 무대 위에서 배우들이 거대한 천을 양쪽에서 잡고 물결처럼 출렁이기 시작했습니다. 무대를 꽉 채울 만큼 큰 천이 파도가 됐고, 그 사이에서 반다리가 수영하듯 움직이며 공주를 구하러 가는 모습은 정말이지 리얼했습니다. 이런 연출 기법을 오브제 씨어터(Object Theatre)라고 합니다. 오브제 씨어터란 무대 소품이나 사물 자체를 배우처럼 활용해 극적 효과를 만들어내는 연극 방식을 뜻합니다.
거기서 든 생각이, 누군가를 정말로 좋아하면 목숨도 거는구나, 였습니다. 그 장면이 추상적인 연출임에도 불구하고 반다리의 절박함이 고스란히 전해졌거든요. 아마 그게 이 작품이 20년 넘게 살아남은 이유 중 하나가 아닐까 싶습니다.
이 공연의 무대 미학(舞臺美學)은 또 하나의 볼거리입니다. 무대 미학이란 공연에서 조명, 소품, 의상, 공간 구성 등이 유기적으로 어우러져 만들어내는 시각적·감각적 아름다움을 말합니다. 새엄마 왕비, 눈꽃사슴, 백마 같은 소품을 배우들이 직접 자신의 몸으로 형상화하여 표현해 내는 방식이 특히 인상적이었는데, 아직 아이가 없는 저로서도 '나중에 아이가 생기면 꼭 한번 데려오고 싶다'는 생각이 자연스럽게 들 정도였습니다.
반다리가 왕자를 찾아가는 여정
제 경험에서는 뮤지컬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장면은 보통 화려한 넘버나 클라이맥스 앞의 아리아인 경우가 많습니다. 하지만 이 공연에서는 달랐습니다. 반다리가 인간 세상으로 찾아 나가 왕자를 직접 만나 공주에게 데려오는 장면, 그게 단연코 이 작품의 심장이었습니다.
생각해 보면 정말 아이러니한 상황입니다. 말도 못 하는 존재가 낯선 세상에 나가서,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을 다른 누군가에게 데려다주기 위해 고난을 감수하는 겁니다. 왕자 역의 김진철 배우는 다정하고 인자한 인물로 반다리의 부탁을 받아주는 인물을 연기했습니다. 다만 반다리가 주인공이다 보니 왕자의 출연 비중이 적어서 그 점은 아쉽기도 했습니다. 김진철 배우의 따뜻한 분위기가 공연 내내 좋았거든요, 더 보고 싶었습니다.
이 장면이 임팩트를 갖는 건 단순히 극적인 고난 때문만이 아닙니다. 순애보(純愛譜)라는 말이 있습니다. 순애보란 오직 한 사람만을 향한 순수하고 이기심 없는 사랑을 뜻합니다. 반다리의 여정은 그 정의에 딱 맞아떨어집니다. 사랑하기 때문에 오히려 떠나보내야 한다는 그 역설적인 감정이 대사 한마디 없이 전해지는 순간이었습니다.
이 작품이 오랫동안 스테디셀러(Steady Seller)로 자리 잡아 온 데는 이유가 있습니다. 스테디셀러란 특정 시즌에 반짝 인기를 끄는 것이 아니라, 긴 시간 동안 꾸준히 관객의 사랑을 받는 작품을 말합니다. 한국문화예술위원회에 따르면 장기 공연 작품은 초연 이후 평균 3~5년 내 폐막하는 경우가 대부분인데, 이 작품은 2001년 초연 이후 2015~2016년 대규모 투어까지 이어지며 무려 15년 이상 무대에 올랐습니다. 그 이후에도 지역 문예회관 등에서 비정기적으로 초청 공연 형태를 이어왔다는 점도 이 작품의 저력을 보여줍니다.
이 작품이 그토록 긴 생명력을 가질 수 있었던 이유를 제 나름대로 정리해 보면 이렇습니다.
- 말 없이 몸으로 사랑을 표현하는 반다리라는 독보적인 캐릭터 설정
- 오브제 씨어터 기법을 활용한 창의적인 무대 연출로 스펙터클과 감동을 동시에 구현
- 어린이부터 어른까지 모두가 공감할 수 있는 보편적인 사랑의 감정을 담은 이야기 구조
- 배우의 신체 표현력이 핵심이기 때문에, 캐스팅에 따라 매 시즌 새로운 감동을 줄 수 있는 공연 특성
지금 다시 무대에 올라야 할 이유
공연이 끝난 후에도 한동안 멍하니 자리에 앉아 있었던 기억이 납니다. 그 여운이 꽤 길었거든요. 그런데 지금 검색해 보니, 현재는 정규 시즌 공연이 진행되지 않고 있음을 알게 됐습니다. 2015~2016년 시즌이 대규모 장기 투어로 언론에 집중 보도된 이후, 지방 문예회관의 비정기적인 초청 공연을 제외하면 공식적인 정규 시즌은 사실상 막을 내린 것으로 보입니다.
그게 너무 아쉽습니다. 어른들을 위한 동화(童話)라는 개념이 있습니다. 동화는 원래 어린이를 위한 이야기이지만, 어른들이 잃어버린 순수함과 감성을 되찾게 해 주는 서사 형식이기도 합니다. 이 뮤지컬은 그 역할을 완벽히 해내며, 우리 모두 한때 어린이었기에 반다리의 순수한 사랑에 깊이 공감하게 만듭니다.
공연 예술에서 재연(再演)은 단순히 과거의 작품을 다시 무대에 올리는 것에 그치지 않습니다. 그것은 새로운 연출과 기술적 시도를 더해 원작의 가치를 오늘날의 시점에 맞게 확장하는 또 하나의 창작 과정입니다. 지금의 발전된 무대 기술과 역량 있는 배우들을 통해 이 작품이 다시 무대에 오른다면, 과거보다 훨씬 깊은 울림을 선사할 것이라 확신합니다. 1~2년에 한 번씩은 이 감동적인 무대를 다시 만날 수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
자주 묻는 질문 (FAQ)
Q. 백설공주를 사랑한 난장이는 어린이 뮤지컬인가요, 어른도 볼 수 있나요?
A. 직접 관람해 보니, 오히려 어른들이 더 깊은 감동을 받고 눈물 흘릴 수 있는 공연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기자기한 소품과 동화적인 무대 때문에 어린이 뮤지컬로 분류되는 경우가 많지만, 반다리의 순애보적인 사랑은 삶의 경험이 쌓인 어른들에게 훨씬 더 깊게 와닿습니다. 우리 모두 한때는 어린이였다는 사실이, 이 공연을 나이와 상관없이 볼 수 있게 만들어 줍니다.
Q. 반다리 역은 왜 대사가 없나요? 공연 내내 말이 없는 건가요?
A. 네, 반다리는 선천적으로 발화 장애를 가진 캐릭터로 설정되어 있어 극 전체에서 단 한 마디의 대사도 없습니다. 대신 마임과 신체 표현, 춤을 통해 모든 감정을 전달합니다. 제 경험상 처음 몇 분은 '말이 없으면 어떻게 감정을 전달하지?' 하고 의아했는데, 금방 그 생각이 사라졌습니다. 오히려 말이 없기 때문에 더 강렬하게 전달되는 감정이 있었습니다.
Q. 이 뮤지컬에서 가장 인상적인 장면은 어떤 건가요?
A. 저는 반다리가 왕자를 찾아 인간 세상으로 떠나 공주에게 데려오는 장면을 강력히 추천합니다. 말도 못 하면서 낯선 세상에 나가 사랑하는 사람을 다른 누군가에게 데려다주는 그 고난의 여정이, 사랑의 의미를 다시 생각하게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공주가 물속에 빠지는 장면에서 거대한 천으로 바다를 표현하는 연출도 절대 잊히지 않습니다.
이 뮤지컬을 보고 나서, 사랑한다는 말을 말로 내뱉는 것보다 행동과 진심으로 보여주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다시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반다리는 말 한마디 없이 그걸 해냈고, 배우 최미령은 그걸 무대 위에서 완벽하게 살려냈습니다. 재연이 언제 될지는 모르겠지만, 이 작품이 다시 무대에 오른다면 망설임 없이 티켓을 예매할 것입니다. 한 번도 안 보신 분이라면, 기회가 생겼을 때 꼭 보시길 진심으로 권합니다.